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든 스트라칸 (문단 편집) === [[던디 FC]] === [[파일:external/3.bp.blogspot.com/Gordon+Strachan+-+Sticker+Dundee+1977.png]] 스트라칸은 1957년 2월 9일 [[에든버러]]에 거주하는 아일랜드계 집안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비계를 만드는 직종에서 일했고 그의 어머니는 [[위스키]] 증류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였다. 15세가 될 무렵, 스트라칸은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축구를 하던 도중에 호주머니 속에 있던 펜이 그가 넘어지는 과정에서 튀어나와 그의 오른쪽 눈을 찔렀다. 이 사고로 스트라칸의 오른쪽 눈은 거의 실명 상태가 되어버렸다. 스트라칸은 어렸을 때부터 [[하이버니언 FC]]의 팬이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축구 인생을 시작할 무렵 하이버니안 측은 그에게 유스 계약을 권유했다. 그러나 스트라칸의 아버지는 구단이 충분한 급료를 제공하지 않았다며 제안을 거부했다. 이후 스트라칸은 1971년 [[던디 FC]]에 소속되어 3년간 유스 클럽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다. 사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스카우터가 그의 잠재력을 눈여겨보며 먼저 계약을 제의했지만 스트라칸은 던비에서 더 많은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 이를 거절했다. 스트라칸은 유스팀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유감없이 선보였고 2군 팀에서는 2번이나 올해의 스코틀랜드 리저브 선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후 스트라칸은 1974-75 시즌에 1군에 올라와 1군 선수들과 함께 훈련했고 1975년 8월 아스날과의 친선 경기때 마침내 데뷔전을 치뤘다. 스트라칸은 1975-76 시즌에 로테이션급 선수가 되어 리그 36경기 중 17경기를 출전했다. 하지만 던디 FC는 리그에서 그다지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언제나 셀틱 아니면 레인저스가 우승을 거머쥐는 것을 바라봐야 했다. 1976-77 시즌, 스트라칸은 팀의 주장이 되었다. 이로서 그는 던디 FC 역사상 가장 어린 주장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하지만 정작 스트라칸은 주장으로서는 별로 재능이 없었는지 팀 성적은 신통치 않았고 팀 동료인 [[지미 존스톤]]과 술파티를 벌이다가 적발되어 주장직을 박탈당했다. 또한 던디 보드진은 스트라칸이 플레이메이커로서 활동하지 않고 혼자서 너무 탐욕을 부려 슛을 마구 쏴대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결국 보드진은 그를 내보내기로 결심했다. 이리하여 스트라칸은 1977년 10월 26일 리그 컵에서 팔머스톤 파크에게 6:0으로 대패당한 뒤 11월에 곧바로 에버딘으로 쫓겨나듯 이적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